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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율 형제

행복한 그리스도인(2)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말씀(Word-단어)을 마음으로 믿는 성도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Word-단어)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The Word)가 아닌 엉뚱한 단어(word)를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믿지 않는 성도가 어디 있느냐?고 하실지 모릅니다.

마귀는 온 세상을 속이는 자입니다.(계12:9)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word)의 의미와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이 말하는 단어(word)의 의미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가 말하는 단어(word)의 의미로 알고 믿는다면 바로 이것이 마귀와 세상에게 속은 것입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단어(word)의 의미와 성경이 말씀하시는 단어(word)의 의미가 다르다면 누가 말하는 단어(word)의 의미가 옳을까요?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이 알려 준 단어(word)의 의미로 잘못 알고 믿은 그리스도인들은 불행하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옳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단어(word)의 의미보다 하나님께서 말하는 단어(word)의 의미가 옳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옳고 하나님께서 말하는 단어(word)의 의미가 옳다고 믿는다면 자유롭고 평안하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확실하게 보장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단어-word)을 바르게 알고 믿는 것이 행복한 삶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word)와 세상과 마귀가 말하는 단어(word)의 차이를 확인해 보시고 세상과 마귀에게 속지 말고 자유롭고 평안하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포천침례교회를 섬기는 작은 종 올림


차 례

1. 하나님(God)과 성경 기록(Scripture)
2. 모든 단어(word)의 정의
3. '죄에 대하여(of sin)'
4. 못 박혀 있는 그리스도인(christian)
5.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6. 믿음(faith) : 하나님의 선물
7. 온 세상을 속이는 자 ; 마귀

부록
하나님의 단어와 세상의 단어
1) 좋은 것(good)
2) 성공(success)
3) 주는 것(give)
4) 하나님의 선물(the gift of God)
5) 위대한 사람(great man and woman)
6) 사람들의 생각(thought)
7) 잘하는 것(well)




1. 하나님(God)과 성경 기록(Scripture)

성경 기록(scripture)을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고 말합니다. “the Word of God”은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입니다. 다만 성경에서만 “Word”를 우리 말의 높임말인 “말씀”으로 번역하였습니다.

[ ✔ 오랫동안 "The Word of God"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번역하고 사용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라고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고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너무 오래 동안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Word”를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은 “Word”의 진짜 의미인 “단어, 용어, 어휘, 낱말”이라는 의미가 쉽게 전달되지 못하는 심각한 약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라고 하면 즉시 그분의 단어(his word)에서 한 단어(a word)를 더 하거나 빼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인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번역하면 “단어”가 아니라 “의미”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이런 단어를 사용하든지, 저런 단어를 사용하든지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의미 전달에 문제가 없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변명이 용납됩니다. 또 의미가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단어로 바꾸어도 문제를 삼을 수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KJV1611의 단어만이 최종권위라는 주장도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말씀”이라는 번역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Word"의 참된 의미인 “단어, 용어, 어휘, 낱말”이라는 의미를 희석시키고 감추는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
우리 언어로 ‘말하는 것(saying, said, told, speaking)’을 높임말로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단어(the Word) 역시 ‘말씀’으로 번역하므로서 말하는 것(saying, said, told, speaking)인지 단어(word)인지 확인이 어렵습니다. “말씀”이라는 표현은 이렇게 ‘saying, said, told, speaking’과 ‘단어(word)’가 구별되지 않는 약점이 있습니다. ‘말하는 것’과 ‘단어’의 구분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 성경 번역에서는 바로 이 점이 간과된 것은 매우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오경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276구절 중 word, words가 54회, word, words가 아닌 다른 단어들인데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들이 222회입니다.
신약 성경의 경우 ‘말씀’으로 번역된 450구절 중 word, words가 193회, 다른 단어들이지만 ’말씀‘으로 번역된 단어들이 257회입니다.
word, words가 아닌 다른 단어들은 ‘say, says, saying, sayings, sayest, said, saith, saidst, speak, speakest, speaketh, speaking, spake, spoken, tell, talked, told, oracles, communing, him, 기타 등입니다. KJV1611에서는 ‘word’ 와 다른 단어들이 구분이 되어 혼란이 없으나 우리 말 성경에서는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혼란이 오고 다툼이 생길 수 있는데 이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word”를 “말씀”이라고 번역하여 100년 이상 사용하였기에 이것을 갑자기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미 굳어진 “말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word"의 참된 의미인 “단어, 용어, 어휘, 낱말”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킹제임스성경(KJV1611)을 최종권위로 믿는 분들이라면 더욱 더 “word”의 순수하고 참된 의미를 알고 사용하셔야 할 것입니다.
* ‘참고로 흠정역 성경 번역자에게 위의 사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었고 ’word‘가 “단어, 용어, 어휘, 낱말”이라는 의미에 100% 동의하지만 우리말의 한계라고 답변하였습니다.’
[◈ God - gods, Son - sons, Spirit - spirits Word - words 를 묵상해 보십시오.]

성경 기록(scripture)은 단어들(words)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기록(scripture)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단어(word)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scripture)과 단어(word)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처음에 말씀(the Word)이 계셨고 말씀(the Word)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the Word)이 하나님(God)이셨더라. (요1:1)

요한복음 1장 1절은 처음에 말씀(단어-the Word)이 계셨고 말씀(단어-the Word)이 하나님(God)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단어-the Word)이 하나님(God)이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단어(말씀-the Word)가 하나님(God)이라고 말합니다. 요한1서 1장 1절에서도 예수님을 생명의 말씀(단어=the Word)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the Word of life)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요일1:1)

단어(말씀-the Word)이신 하나님(God)께서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씀(the Word)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하나님의 단어(the Word)가 바로 하나님이시며, 단어(the Word)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16절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13절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단어)이라 불리느니라(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계19:13)

하나님의 말씀(단어)(the Word of God)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 기록(scripture)을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 기록을 믿는다, 성경에 기록된 단어(word)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scripture)에 있는 모든 단어(word)는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갖습니다!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단어(word)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단어(word)를 믿는 것입니다. 아득하게 멀리 있는 추상적인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구절들은 ‘하나님(God)’이라는 단어가 있어야 할 곳에 ‘성경 기록(scripture)’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시니라. (요7:38)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시니라. (롬4:3)
성경 기록이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내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너를 일으켰나니 (롬9:17)
또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니 (롬10:11)
너희가 성경 기록이 엘리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롬11:2)
그러나 성경 기록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갈3:22)

위의 구절들에서 ‘성경 기록’이라고 기록된 곳은 ‘하나님’이라는 단어(word)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단어(word) 대신에 ‘성경 기록’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과 바울이 실수로 잘못 기록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과 ‘성경에 기록된 모든 단어’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가 있음을 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성경(scripture)에 기록된 단어(말씀-Word)를 믿는다’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성경 기록 스스로 ‘성경 기록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사실’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믿어야만 합니다. 또 ‘성경에 기록된 단어(The Word)를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로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입니다!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what saith the scripture?](갈4:30)

갈라디아서 4장 30절은 ‘하나님께서 무어라 말하느냐?’라고 묻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어라 말하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무어라 말씀(what saith God?)하시는지 찾아보고 그분의 단어(word)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2. 모든 단어(word)의 정의

구세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단어(the Word)이신 하나님(God)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어(the Word)시라면 모든 단어의 정의는 단어이신 분께서 스스로 단어의 정의를 결정하실 것입니다. 성경 기록(scripture)의 모든 단어(word)는 물론 세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역시 단어(the Word)이신 분께서 정의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단어(word)없이 대화할 수 없듯이 단어(word)없이 어떤 창조도 할 수 없습니다. 창조 사역에서 아버지(The Father)와 말씀(The Word)와 성령님(The Holy Ghost)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말하시는 분은 아버지(The Father)시고 말씀하시는 것은 단어(The Word)를 사용하시고 사용하신 단어 그대로 현실로 만드시는 분은 성령님(The Holy Ghost)이십니다. 대표적으로 6일 창조는 좋은 예입니다.

첫째 날 창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God said)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단어는“빛이 있으라”는 단어였습니다.(Let there be light)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단어 그대로 “빛이 있게” 하였습니다.(there was light)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창1:3)

원초적 존재이신 아버지 하나님(The Father)께서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는 단어(The Word)를 말씀하시고(God said) 성령님(The Holy Ghost)께서는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는 단어 그대로 빛이 있게 하셨습니다.(there was light) 창세기 1장부터 요한 계시록 22장까지 변함없이 아버지 하나님(The Father)과 단어 하나님(The Word)과 성령 하나님(The Holy Ghost)께서는 항상 함께 사역을 하십니다. 이처럼 단어(The Word)는 창조하고 만드시는 하나님의 속성이기에 단어(The Word)없이 만들어 진 것은 전혀 없습니다.(요1:1-3, 골1:16, 고전8:6)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1:3)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 (골1:16)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히1:2b)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항상 단어(word)가 사용되었고 어떤 것도 단어 없이 창조되고 만들어 지지 않았음을 잊지 마십시오.(창1:3,6,9,11,14,20,24. 요1:1-3)
하나님의 말씀(Word;단어)은 창조주 하나님(God)과 동일하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요1:1, 요일1:1)

처음에 말씀(Word)이 계셨고 말씀(Word)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Word)이 하나님(God)이셨더라. (요1:1)

이 구절을 [처음에 단어(Word)가 계셨고 단어(Word)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단어(Word)가 하나님(God)이셨더라.] 라고 번역하고 이해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말씀(Word)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단어(the Word;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단어이신 하나님께서 창조의 주역이셨고 단어(word)없이 창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창조의 주역이신 분께서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이시기에 모든 단어(word)의 정의를 스스로 내려주십니다. 성경 기록에서 어떤 단어(word)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곳에서 그 단어의 의미를 정의해 주시고 또 성경 전체에서 같은 의미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성경의 최초 언급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좋다, 선하다”는 단어인 "good"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보통 “좋다, 선하다”는 의미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좋으면 좋은 것(good)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면 선한 것(good)입니다. 그러나 단어(the Word)이신 하나님(God)께서는 스스로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good) (창1:4)

“좋다, 선하다”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좋고 선한 것입니다. 사람들 눈에 좋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생각에 선하다고 선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보기에 좋고 자신의 생각에 선하면 선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단어(word)를 스스로 정의하시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의미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단어(word)를 왜곡하여 사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이며, 속은 것입니다.(요16:9)



3. '죄에 대하여(of sin)'

처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지 않았던 마귀는 아담과 이브 이전에 이미 죄를 범하였습니다. 마귀의 죄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왕좌를 탐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한 마귀는 결코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믿지 않습니다.(사14:13-14) 처음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죄를 범한 마귀는 창세기 3장에서 이브에게 나타나서 동일하게 하나님의 단어를 믿지 못하도록 속입니다.(창3:13, 고후11:3)
마귀는 지금도 변함없이 기록된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단어를 믿으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믿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옛 뱀인 마귀가 이브에게 나타나서 어떻게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사용해서 이브에게 하나님의 단어를 믿지 못하도록 속였는지 살펴보면 마귀의 속임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속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단어를 사용할 때 반드시 더 하거나 빼거나 바꾸는 것입니다.
처음 이브에게 나타난 옛 뱀 마귀가 하나님의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 하나님의 단어 :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Of every tree of the garden thou mayest freely eat:)
◑ 마귀의 인용 :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마귀의 속임수는 ‘freely’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후 ‘not’이라는 단어로 바꾸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단어의 배열순서도 바꾸었고, 말씀하신 기록된 단어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품게 합니다. 이브에게 사용한 방법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귀에게 속은 사람들도 역시 마귀처럼 마귀의 속임수를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freely"는 순수한 하나님의 단어입니다. 그러나 "freely"를 삭제한 후 사용된 “not”은 변질된 마귀의 단어입니다.
마귀의 말(단어-word)에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단어-Word)을 단순하게 믿지 못한 첫 번째 여자인 이브는 마귀의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순수한 하나님의 단어를 변질시킵니다.

☑ 창2:16-17과 창3:2-3 비교해 보십시오.

◐ 진리인 하나님의 단어 :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

◑ 여자의 단어 인용 :
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나무들의 열매는 먹어도 되나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창3:2-3)

마귀의 단어에 속은 이브는 마귀처럼 하나님의 단어에서 ‘마음대로(freely)’라는 단어를 삭제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만지지도 말라(neither shall ye touch)’라는 단어를 첨가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으리라(surely die)’고 하셨으나 ‘죽을까 염려하노라(lest ye die)’라고 바꿨습니다. 이렇게 진리인 하나님의 단어를 믿지 않고 빼고 더 하고 바꾼 후에 금지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서 어떤 범죄든지 죄의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진리인 하나님의 단어를 믿지 않고 더 하고 빼고 바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브와 똑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더 하거나 빼거나 바꾸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속은 것이며, 불신이며, 죄입니다.(신4:2, 12:32, 잠30:6, 계22:18-19)
말씀(단어-the Word)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단어- the Word-예수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요16:9)

이 구절에서 '나'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the Word:단어)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요1:14) 말씀(Word:단어)이신 분을 믿지 않는 것, 곧 진리인 성경 기록에 기록된 단어(Word)를 믿지 않는 것이 곧 죄입니다!



4. 못 박혀 죽어 있는 그리스도인(christian)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마음으로 믿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록된 성경 기록을 마음으로 믿는 것(believe)외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경 기록을 마음으로 믿는 것(believe)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faith)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고 성령에 의해 한 몸 안으로 침례 되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고전12:13)

[☞ ✔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되어 한 몸이 되었기에 2000년 전 십자가의 대속은 과거의 대속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인에게 대속이 됩니다. 시간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2000년 전 사건은 과거입니다. 그러나 침례에 의해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기에 과거의 사건이 하나님 안에서는 현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몸은 살아있었으나 하나님께 속한 영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살아있는 내 몸을 내가 사용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죄에 속한 몸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있고, 하나님께 속한 영은 거듭났기에 영은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과 사람의 영은 정상적으로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3:5-6) 그리스도인의 죄 값이 지불되어 그리스도인의 몸과 영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고전6: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20)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소유인 그리스도인의 몸을 사용하셔서 대신 살아 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혼은 자신의 몸을 그리스도의 소유인 것을 인정하고 믿어야만 그리스도께서 대신 살아주실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소유이며(고전6:20)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갈2:20, 5:24) 그러므로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요15: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2:20)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for without me ye can do nothing.). (요15:5)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있는 시체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육체 안에서 사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life)은 죽어 있는 나를 대신 하여 그리스도께서 대신 살아주시는 삶입니다. 또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 힘과 내 노력과 내 생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스스로 아무 일(work)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서(롬6:2) 옛사람(자아)에 대해서(롬6:6) 율법에 대해서(롬7:4) 세상에 대해서(갈6:14) 이미 죽은 자라고 성경 기록은 선언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소유이며(고전6:20)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있는 시체와 같습니다(갈2:20).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영은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마음으로 믿도록 권면하고 강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마음으로 믿도록 강권하는 영의 요구와 권면을 믿고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영의 요구와 권면을 무시하고 육체를 신뢰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르든지 선택은 각 그리스도인의 혼이 결정합니다.
영의 요구와 권면을 신뢰하고 믿으면 그리스도께서 일하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되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요구와 권면을 거절하고 육신의 요구에 따라 살면 간음, 음행, 부정함, 색욕, 우상숭배, 마술, 증오, 불화, 경쟁, 진노, 다툼, 폭동, 이단파당, 시기, 살인, 술취함, 흥청대는 육신의 행위들이 있을 것이고 보상은 받지 못할 것입니다.
각자의 선택에 따라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거나, 아니면 초조하고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저 세상에서는 금과 은과 보석과 같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보상으로 상속받거나 아니면 나무와 건초나 짚처럼 불타 버리고 아무 보상도 없는 부끄러운 구원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포도나무 가지처럼, 시체와 같은 특징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가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죽어있는 시체도 아무 일(work)도 할 수 없고 아무 힘(power)도 없습니다. 시체는 아무 소유도 없습니다.(고전 4:1, 벧전4:10)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주장도 못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어 있는 시체와 같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온유하고 평화롭게 가장 부요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죽은 시체이기에 가장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고전13:4, 사40:31) 비록 시체와 같은 존재이지만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부족한 것 없이 부요함을 누리며 나눠주고 즐기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살아 주신다면... 그리고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하나님께 많은 칭찬을 받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믿지 않고 내가 살아 있고 내 소유가 있고 내 힘이 있어서 내가 뭔가 할 수 있고 내 생각이 있고 내 자랑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세상에서 삶은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삶은 평안도 없고 자유도 없고 미움과 시기와 증오, 불화, 경쟁, 진노, 다툼 속에서 죄의 노예로 살게 될 것입니다.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하나님께 심한 책망과 함께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for without me ye can do nothing.). (요15:5)

그리스도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죽어 있는 시체에 불과함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마음으로 믿거나 혹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마음으로 믿으면 믿은 단어(word) 그대로 성령하나님께서 현실이 되도록 일해 주시고 대신 살아주실 것이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마음으로 믿지 않는다면 마귀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며, 보상이 아닌 부끄러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택은 각 그리스도인의 몫입니다!



5.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았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 안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을 그분의 작품으로 만드셨고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엡2:10,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고후5:17)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2:10)

그리스도인을 그분의 작품으로 새로운 창조물로 창조하신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 스스로 걷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걷게 하는 주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앞의 장에서‘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에서 이미 다뤘듯이 선한 행위(good work)를 하는 주체가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 안에는 창조주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골1:2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골1:27)

그리스도인의 몸 안에 계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신실하신 이, 참되신 이시며 왕들의 왕이시고 주들의 주이십니다.(계19:11,16)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면 무엇이 부럽고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진리인 성경 기록(scripture)이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성경 기록(scripture)을 믿을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가난이 염려되고 고통이 무섭고 죽음이 두렵겠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는 영광의 소망이신 창조주께서 계십니다! 이것은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지만 절대적 사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일 하시고 대신 살아주신다면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겠습니까?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빌2:13)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있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리스도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신뢰하고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인의 몸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은 단어 그대로 일하시며 대신 살아 주시는 것은 절대적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골1:27, 빌2:13)
그리스도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죽어있는 시체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단순하게 믿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이며, 기초입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믿었다면 이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너희는 죽었고 너희 생명(life;삶, 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3:3)

성경 기록은 ‘너희는 죽었고’라고 선언합니다. 또‘너희 생명(life;삶, 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느니라’라고 기록합니다. 다음 구절인 골로새서3장 4절에서도 ‘우리의 생명(life;삶, 생활)이신 그리스도(When Christ, who is our life)’라고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죽었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드러내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인 성경기록 그대로 믿을 것만을 요구하십니다.
거짓말할 수 없는 진리인 성경 기록을 어린아이처럼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거짓을 말씀하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만 거짓 없는 절대 확실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로 해석하거나 더하거나 빼거나 바꿀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단어를 신뢰하고 믿어서 지옥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또 구원받았다면 진리를 알고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딤전2:4, 요8:32)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인 하나님의 단어를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믿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그 결과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가득한 세상에서 힘들고 어렵게 고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신뢰하고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을 새 창조물로 창조하고 만드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믿은 그 단어(the word)는 그대로 현실이 될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빌2:13)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유롭고 편안하게 행복을 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운 사람이 있고 부러운 것이 있고 어렵고 힘들고 괴롭습니까?
진리인 하나님의 단어를 신뢰하고 믿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즉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단어를 어린아이처럼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믿은 단어 그대로 현실이 될 것이며, 자유롭고 편안한 행복을 누리실 것입니다!


6. 믿음(faith) : 하나님의 선물

믿음이란 믿는 것의 명사형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믿음(faith)이란 믿는 것(believe)의 명사형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자신이 마음으로 굳게 믿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faith)은 예수님께서 창시하시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히12:2a)

믿음(faith)은 예수님께서 창시하시고, 완성하신 예수님의 소유와도 같은 것입니다.믿음(faith)이 예수님의 소유와 같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셔야만 우리가 믿음(faith)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유인 믿음(faith)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엡2:8)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었을 때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처럼 은혜, 믿음, 구원받는 것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아무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믿음(faith)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시하시고, 완성하신 믿음(faith)에 대한 정의는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히11:1)

‘믿음(faith)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믿음(faith)의 정의는 자칫 모순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라는 것들과 실체’는 모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과 증거’도 역시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바라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실체(the substance)는 말 그대로 보이는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역시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증거’는 보이는 실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체(the substance)와 증거(the evidence)는 실제로 만져지고 보이는 것들이기 때문에 ‘바라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실체와 증거’라는 믿음(faith)의 정의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모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단어를 신뢰하고 믿는 것’은 ‘바라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단어를 순종하고 믿으면 믿은 하나님의 단어들은 모두 보이는 실체가 되고 실제 증거로 현실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faith)의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빌4:19)’를 신뢰하고 믿었다면 모든 필요의 공급은 현실이 됩니다. 만약 모든 필요가 공급되지 않았다면 성경 기록을 신뢰하고 믿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단어를 신뢰하고 믿었다면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실체가 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진리를 신뢰하고 믿었다면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의 몸을 사용해서 실제로 원수를 사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faith)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믿은 하나님의 단어는 반드시 실체로, 증거로 현실이 됩니다. 자신은 믿음(faith)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체인 증거가 없다면 하나님의 단어를 믿지 않은 것입니다.(약2:17)
실체로 나타나는 증거가 없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faith)이란 반드시 실체와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히11: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히11: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믿음(faith)이란 실제 삶속에서 하나님의 단어를 믿고 자유롭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단어를 마음으로 믿으므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인 ‘믿음’을 통해 성령께서 믿은 그 단어를 현실로 만드시는 것을 계속해서 누리는 행복한 삶입니다. 오직 믿음(faith)을 통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고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복한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빌립보서 2장 12-13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빌2:12-13)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work out your own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고 기록되었습니다.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는 말씀에서 일하여 드러내는(work out) 주체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고 분명하게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빌2:13)
또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순종(obeyed)은 믿는 것(believed)과 동의어로 사용되었기에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를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믿음(faith)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삶으로 드러내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믿음(faith)은 예수님께서 창시자하고 완성자하신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믿음(faith)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순종할 때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함께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faith)이란 선물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시다!



7. 온 세상을 속이는 자 ; 마귀

마귀는 “온 세상을 속이는 자”입니다.(계12:9) 마귀는 마귀의 뜻대로 사람들을 죽이거나 병들게 하거나 사고를 내도록 하거나 망하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마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속이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옛 뱀인 마귀가 이브에게 사용한 방법은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믿지 못하도록 속이는 것이었습니다.(창3:13, 고후11:3) 속이는 자인 마귀는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단어를 사용하거나 인용할 때는 반드시 더 하거나 빼거나 바꾸어서 사용합니다.
처음 이브에게 나타난 옛 뱀 마귀가 하나님의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살펴보면 마귀의 속임수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단어 :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마음대로 먹어도 되나
(Of every tree of the garden thou mayest freely eat:)
◑ 마귀의 인용 :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마귀의 속임수는 ‘freely’를 삭제한 후 ‘not’으로 바꾸고 진리인 하나님의 단어를 기록된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품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브에게 사용한 방법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실 수 없는 하나님! 진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탐욕은 우상숭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도록 속이므로 탐욕을 낸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부도를 내고 고생하도록 합니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믿지 못하게 속여서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게 하고 마귀는 징계의 도구로 쓰임을 받습니다.
“속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잊지 마십시오.(갈6:7, 고전15:33)

“온 세상을 속이는 자”인 마귀는 어떻게 무엇을 속일까요?
마귀는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믿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단어(the Word)이신 하나님(God)께서 모든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십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단어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믿도록 속입니다.
단어(the Word)이신 하나님께서 정의하시는 단어의 의미와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이 정의하는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면 누구의 정의가 옳겠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성경이 말씀하시는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면 누가 말하는 단어의 의미가 옳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의 의미가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의 의미가 옳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가 말하는 단어의 의미로 알고 믿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바로 이것이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공(success)이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의미는 학력, 재력,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유명한 일류 대학에서 박사학위도 취득하고, 많은 재력도 있고 권력도 있으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이 입에서 떠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십니까?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십니까?(keep)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공의 조건입니다! 누가 성공했고 실패하였는지는 현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 성공과 실패가 가려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의미를 믿을 거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단어를 심으면 성령의 열매를 거둘 것이며, 마귀에게 속으면 속은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각 개인이 무엇을 심든지 자신이 심은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정의하시는 단어의 의미도 모르는 채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이 알려 준 단어의 의미로 잘못 알고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불행하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의 의미가 옳다고 믿으면 자유롭고 평안하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확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마귀는 성경 기록에 있는 단어를 믿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정의하시는 단어의 의미를 믿지 못하도록 온 세상을 속이고 있습니다.(계12:9)
이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갈6:7)



부록
하나님의 단어와 세상의 단어

복음(gospel)과 단어(word)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복음(gospel)은 ‘하나님;God’과 ‘철자;spell’의 줄임말입니다. 복음(gospel)은 하나님을 알고 배우기 위한 첫걸음이며 출발점입니다. 복음(gospel)은 영어의 ‘알파벹’과 같고 한글의 ‘가나다라’와 같습니다. 기초 철자(spell)를 알고 난 후에 단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단어를 알고 나면 문장을 만들고 읽고 가르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철자인 복음(gospel)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로 태어났다면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단어를 알면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문장도 만들고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고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단어를 알지 못하고 세상의 단어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바른 의사소통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세상의 속임수에 따라 잘못된 삶을 살아갑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단어와 오염된 세상의 단어는 무엇이 다른지 확인하고 올바른 하나님의 단어를 믿고 진리의 단어로 의사소통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단어(the Word)이신 하나님(God)께서 정의를 내려 주신 단어의 의미대로 믿고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단어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알고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마귀는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단어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믿고 사용하도록 속입니다. 이것은 “온 세상을 속이는 자”인 마귀가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입니다.
“온 세상을 속이는 자”인 마귀가 속이는 단어들 중에 몇 가지를 부록으로 실어 둡니다. 참고 하시고 마귀에게 속지 마시고 바른 하나님의 단어로 바르게 알고 믿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1) 좋은 것(good)

사람들은 자신이 보기에 좋고 자신의 마음에 들면 좋은 것(good;선한 것)이고, 자신이 보기에 나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쁘다고 합니다. [* 좋은 것의 반대는 나쁜 것입니다.(창24:50, 31:24,29. 레27:10. 고후5:10) 마22:10]
성경 스스로 말씀하시는 좋은 것(good: 선한 것)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창1:4a)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진리의 책인 성경 기록은 ‘좋은 것’(good)이란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은 것(선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좋은 것(선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선한 것)이 아니라면 좋은 것(선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은 빛입니다. ‘좋은 것(선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며, 빛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쁜 것(bad)’은 사람들 보기에 좋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면 ‘나쁜 것’입니다.

이처럼 좋다(선하다)의 기준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고 쉬운 하나님의 단어의 정의를 믿지 않을 뿐입니다.


2) 성공(success)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은 학력, 재력,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유명한 일류 대학에서 박사학위도 취득하고,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고 권력도 있으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의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성공(success)이라는 단어는 여호수아서 1장 8절 오직 한 곳에서만 언급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이 입에서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묵상하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법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성공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누가 성공했고 실패하였는지는 현 세상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 성공과 실패가 가려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공에 대한 단어의 정의 중 누가 옳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학력, 재력, 권력을 갖는 것, 유명해지고 대저택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권력을 누리는 것이 성공이라면 소수의 사람들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돈도 없고 학벌도 없고 권력도 없는 사람들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면 많이 배웠든지 배우지 못했든지,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약하든지, 권력이 있든지 권력이 없든지,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별하시지 않고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의 성공은 진짜 성공이 아닙니다. 진짜 성공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서는 바로 그날! 성공인지 실패인지 판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성공(success)도 아닌 것을 성공(success)인줄 알고 한 평생을 바쳤는데 정작 성공(success)이 아니라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더 늦기 전에 참된 성공(success)을 향해 달려가는 생활이 되기 바랍니다.


3) 주는 것(give)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면 감사의 말이든지 또는 물건의 값을 대가로 받습니다. 주면 받는 것(Give and Take!)은 세상의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이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의 통치방법입니다. 마귀의 불법이 발견된 것은 마귀가 상품이 많았고 이 상품으로 거래를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겔서 28:14-18을 읽어 보십시오.)

네 상품이 많으므로 ... 네가 죄를 지었도다.(겔28:16)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를 주었으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들어야 합니다. 돈을 주었으면 물건(상품)을 가져가야 합니다. 일을 해 주었으면 대가를 받습니다. 그냥 주기만 하면 손해 보는 것이 세상의 원칙이며 보통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든 주면(give) 작든지 크든지 받는 것(take)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까지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주는 것(give)은 주는 것(give)일 뿐입니다. 무엇이든지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처럼 상품으로 거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햇빛, 공기, 물, 중력, 사랑, 생명 etc)을 주시는 분(giver)이십니다. 결코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마10:28, 막10:45)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마20:28)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까지 주시는 분이시라면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는 것(give)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원칙이며, 이것을 균등의 원리라고 합니다.(고후8:14-15)

다만 균등의 원리를 따르려는 것이니 곧 이제 이번에는 너희의 넘치는 것으로 그들의 부족함을 공급하고 또한 그들의 넘치는 것으로 너희의 부족함을 공급하여 균등하게 하려는 것이라.(고후8:14)

주는 것(give)은 낙원의 생활원칙입니다. 주고, 또 주고, 또 주는 것을 일컬어서 ‘선순환’이라고 합니다. 주면 받기를 바라거나 주지 않고 받기만 하려는 것은 악순환이라고 합니다. 뭔가 주었으나 받지 못하면 훔치거나 강탈합니다. 이것은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이시고 그분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을 통해서 자유롭고 평안하고 행복한 하늘 낙원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선물(the gift of God)

하나님의 선물(the gift of God)이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것을 아무런 대가없이 주신 것’을 말합니다.

또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의 모든 수고로 인한 좋은 것을 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아노라. (전3:13)

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부와 재물을 주시고 또 그에게 그것을 먹고 그의 몫을 취하며 그의 수고한 것을 기뻐할 권능을 주셨나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로다. (전5:19)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 소유한 재물, 지위, 명예가 모두 자기 노력과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것과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성도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속에서 살아갑니다.(고후9:15)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인하여 그분께 감사하노라.(고후9:15)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gift)을 주실 뿐 아니라(전3:13)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주십니다.(롬6:23, 고전9:15, 엡1:3, 약1:17)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오직 섬기고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막10:45)

그러나 마귀는 결코 선물(gift)을 주지(give) 않습니다. 마귀는 상품(merchandise)으로 무역(traffick)을 하고 거래(merchandise)를 합니다. 마귀의 죄가 들어난 것도 상품이 많은 것이었습니다.(겔28:5, 16)

네 상품(merchandise)이 많으므로 그들이 네 한가운데를 폭력으로 가득 채우매 네가 죄를 지었도다. (겔28:16a)

하나님의 아들들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처럼 거래(merchandise)할 수 없습니다! 부요하신 하나님처럼 주는 것(give)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가졌고 또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고후6:10, 고전 3:21-22, 엡1:3)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다. (고후6:10)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엡1:3)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영적인 복을 받은 자가 무엇을 바라며 주겠습니까?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물(gift)로 주셨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주는 것(give)이 삶의 원칙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give)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며, 그것은 주는 것(give)이 아니라 거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겔28:5)
주면 받는(give and take!) 거래(merchandise)는 마귀의 속성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을 주시는(give) 하나님처럼 오직 주는(give)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것을 아무런 대가없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대가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그 무엇으로도 값을 치를 수 없을 만큼 값지고 귀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아무도 값을 치를 수 없이 값지고 귀한 선물이기에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없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5) 위대한 사람(great man and woman)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위대한 사람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거나 많은 재물을 모아서 많은 도움을 준 것이 널리 알려지면 그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사람이란 특별하게 뛰어난 사람이거나, 인류에게 많은 공헌을 한 사람, 혹은 특별한 지위에 오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어서 유명해진 사람을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야 하며, 이러한 극소수에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사람은 동경의 대상일 뿐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남자’와 ‘위대한 여자’라는 표현을 각각 한 번씩 언급하십니다.(삼하19:32, 왕하4:8)

이제 바르실래는 매우 늙은 사람으로 나이가 팔십 세더라. 그가 매우 창대한 사람(a very great man)이었으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거할 때에 왕에게 양식을 제공하였더라. (삼하19:32)

매우 위대한 사람(a very great man)인 바르실래는 다윗왕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서 마하나임으로 피난하였을 때 “침상들과 대야들과 질그릇들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콩과 꿀과 버터와 양과 암소의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및 그와 함께한 백성이 먹게” 하였습니다.(삼하17:27-29참고) 그 후 요압이 반역했던 압살롬을 죽인 후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요르단을 건너려고 할 때 “바르실래가 왕을 안내하여 요르단을 건너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왕과 함께 요르단을 건넜는데” 이 때 다윗은 곤경에 처하였을 때 도움을 베풀었던 바르실래에게 보상을 베풀려고 함께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권합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나와 함께 먹게 하리라, 하니 (삼하19:33)

도움을 보상하려는 다윗왕에게 바르실래는 “내가 얼마나 더 살겠기에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이 날 내가 팔십 세니 어떻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리이까? 주의 종이 먹거나 마시는 것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내가 노래하는 남자들과 노래하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그런즉 어찌하여 주의 종이 내 주 왕께 오히려 짐이 되리이까?”라고 말하며 거절합니다.

이 성경 기록에서 바르실래가 어떤 큰 업적을 이루거나 높은 지위에 있거나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르실래를 ‘매우 위대한 남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위대한 사람이란 특별하게 뛰어난 사람이거나, 인류에게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어서 유명해진 사람을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룬 업적이 전혀 없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으면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위대한 사람’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어떤 대가도 전혀 바라지 않고 도움을 줍니다. 이것이 ‘위대한 사람’이 하는 ‘위대한 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요1:12. 롬8:14,19. 요일3:1-2)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분이 계실까요? 그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면 이미 ‘위대한 사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위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바르실래처럼 고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열왕기하4장 8절에서 ‘위대한 여자’가 언급됩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창대한 여인(a great woman) 하나가 있더라. 그녀가 그에게 강권하여 빵을 먹게 하므로 그가 지날 때마다 빵을 먹으러 거기로 들어갔더라. (왕하4:8)

엘리사가 수넴에 왔을 때 ‘위대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위대한 여인 역시 엘리사에게 “강권하여 빵을 먹게 하”고 빵을 먹게 하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자기 남편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작은 방을 담 위에 지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녀가 자기 남편에게 이르되, 이제 보소서, 계속해서 우리 곁을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내가 아노니 원하건대 우리가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그를 위하여 거기에 침상과 상과 의자와 등잔대를 놓으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로 들어가리이다, 하였더라.(왕하4:9-10)

그리고 엘리사에게 그 방에서 쉬어 가도록 배려합니다. 엘리사는 이 위대한 여인의 배려에 보상을 하려고 합니다.

그가 자기 종에게 이르되, 이제 그녀에게 말하기를, 보라, 네가 이 모든 배려로 우리를 위해 마음을 많이 쓰는도다. 너를 위해 무엇을 하랴? 너 대신 왕에게 혹은 군대 대장에게 말해 주기를 원하느냐? 하라, 하니 (왕하4:13a)

이 여인을 불러 "보라, 네가 이 모든 배려로 우리를 위해 마음을 많이 쓰는도다. 너를 위해 무엇을 하랴? 너 대신 왕에게 혹은 군대 대장에게 말해 주기를 원하느냐?"하고 보상을 하려하자 이 위대한 여인은 “나는 내 백성 가운데 거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녀가 대답하되, 나는 내 백성 가운데 거하나이다, 하니라. (왕하4:13b)

수넴에 있는 이 위대한 여인 역시 위대한 남자인 바르실래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뿐 보상을 전혀 바라지 않고 베풀어주었습니다.
바르실래와 수넴에 있는 여인 모두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바르실래와 수넴에 있는 여인은 어떤 큰 업적을 이루거나 높은 지위에 있거나 널리 알려진 사람이 되어서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이 아닙니다. 바르실래와 수넴에 있는 여인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 마음만 있다면 위대한 남자와 위대한 여자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사람’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아무 업적도 없고 권력도 없고 이름도 알려 지지도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예수님의 업적이 있고 예수님의 권능이 있고 하나님께 알려진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들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이 온 우주에 알려질 것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요일3:1)

모든 것을 가졌고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들인 그리스도인들이여! 무엇이든지 누구에게든지 넉넉하게 베풀어 주는 위대한 일을 하는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6) 사람들의 생각(thought)

성경은 오류가 전혀 없는 하나님의 생각이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을 단순하게 믿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고후1:12, 히11:6, 계4: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기록을 믿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사람들의 생각”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 6장 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창세기 6장 5절에서 처음 등장하는 “사람의 생각(thought)은 항상 악하다”고 성경은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항상 옳고 사람들의 생각은 항상 악합니다.

창세기에서 “생각(thought)”이라는 단어가 모두 다섯 번 언급되는데 이곳들만 확인해 보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생각에 대한 언급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생각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 까닭은 분명히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므로 내 아내로 인해 그들이 나를 죽일 줄로 내가 생각하였기 때문이라.(창20:11)

창세기 20장 11절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줄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생각이 옳았다면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창12:2)”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창12:7)”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말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참고할 가치도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세 번째 언급은 창세기 38장 15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지파에서 오셨고 바로 그 유다지파의 뿌리인 유다의 생각입니다. 유다에게 엘, 오난, 셀라라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맏아들 엘은 다말과 결혼했는데 엘이 사악하므로 하나님께서 죽이셨습니다.(창38:7,대상2:3) 그러므로 둘째 아들인 오난을 형수에게 들어가게 해서 형의 씨를 잇도록 했으나 오난이 씨를 주지 않자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이에 유다는 다말에게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셀라가 장성했으나 유다는 셀라도 죽을 것을 염려해서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말은 과부 옷을 벗고 베일로 가리고 딤낫으로 가는 길 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유다는 길가에 앉아있는 며느리인 다말을 창녀로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자기 얼굴을 가렸으므로 유다가 그녀를 보고는 그녀를 창녀로 여기고(thought-생각하고) (창38:15)

다말을 창녀로 생각하고 며느리인 다말에게 들어가 아이를 잉태하게 하였습니다. 유다의 생각도 역시 낙제점이었습니다.

네 번 째 언급은 창세기 48장 11절에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인 야곱의 생각이 언급됩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였는데, 보라, 하나님께서 내게 네 씨도 보여 주셨도다, 하니라. (창48:11)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하였고 다시 볼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였으나 손자까지 보았습니다. 야곱의 생각 예외 없이 틀렸습니다.

다섯 번 째 언급은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의 열 명의 형들이 생각이 언급됩니다.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이 선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하게 하셨나니 (창50:20)

열 명의 형들의 생각 역시 모두 악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평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 주가 말하노라.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기록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있는 하나님의 단어들로 하나님의 생각들이 기록된 살아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사람의 생각을 따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면 누구의 생각을 따르시렵니까?

주께서 이교도들의 계획을 무산시키시며 백성들의 계략들을 무효로 만드시는도다. 주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분의 마음의 생각들은 모든 세대에 이르리로다. (시33:10-11)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 주가 말하노라.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7) 잘하는 것(well being)

요즘 사람들은 웰빙(well being)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웰빙(well being)은 오염되지 않은 천연 재료로 지은 건물에서 슬로우 푸드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유기농 먹거리를 먹는 생활을 말합니다. 웰빙(well being)이란 ‘잘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잘하는 것(well being)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로부터 나온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들은 것이니라. 또한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do well)이니라. (벧후1:16-19)

베드로후서 1장 16절부터 19절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와 제자들은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예수님의 모습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어서 모세와 엘리야가 그분과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나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마17:1-6, 막9:1-8, 눅9:28-36에 기록된 사실들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지만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다’고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보다‘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은 기록된 성경입니다!
바로 이 기록된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 하는 것(well being)"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웰빙(well being)이란 ‘하나님의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잘하는 것(웰빙)’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웰빙(잘하는 것)에는 주의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자신이 아무리 잘 하고 있다(웰빙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잘하는 것(well being)이 아니라면 잘못된 웰빙(well being)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아무리 좋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에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의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신뢰하고 믿는 것만이 웰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웰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치면서

세상의 마지막이 매우 가깝습니다.
20여년전 로마 카톨릭교회와 제수이트, 일루미나티와 세계 정부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할 때 만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을 노예로 전락시켜 지배하려는 세계정부 음모는 먼 훗날 일어날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질만능시대, 글로벌화, 세계화란 미명하에 하나의 경제, 하나의 정부,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는 현실이 바로 눈앞에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마지막 정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완벽한 왕국이 건설될 것이지만 그전에 마귀가 다스리는 대환란의 세상이 시작될 징조는 매우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 통치자인 마귀의 음모를 막아낼 수 있는 오직 성경만을 믿는 강력한 교회도, 오직 성경만을 믿는 강력한 정치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 소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제 하나의 세계를 한 지도자가 지배하려는 음모는 거의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머잖아 주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살후2:1-2)

마지막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해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을 알았다면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더 즐기려 하고 더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마귀에게 철저히 속는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동안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해야겠고, 한 사람이라도 더 진리를 알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신실하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다가 주님 오시면 즐겁게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결코 잊지 마실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무 일(Work)도 할 수 없는 시체처럼 무익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단어를 신뢰하고 믿는 것만은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단어를 신뢰하고 믿기만 하면 믿은 하나님의 단어 그대로 성령님께서 현실로 만드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은 하나님의 단어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모두 풍성한 보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를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유롭고 평안하게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만 주님 오실 때 신실한 청지기로 드러나게 되고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지 않는다면 내 생각은 항상 악하다는 것!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내가 할 것 오직 하나! 주님 오실 그 날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단어를 마음으로 믿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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